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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달리는 사람이 잘 달리는 사람이라는 말, 저도 한때는 당연하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달리기를 시작하고 1년 만에 출전한 첫 10km 대회에서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을 맛보고 나서야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오버페이스 한 번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게 하는지, 몸으로 배운 이야기를 정리해 봤습니다.

10km가 왜 생각보다 훨씬 먼 거리인가
10km를 짧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마라톤도 아닌데 뭐"라는 말을 실제로 주변에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 지하철 노선도를 한 번만 펼쳐봐도 감이 옵니다. 여의도역에서 강남역까지 직선거리가 약 9.5km입니다. 그 구간을 대중교통으로 이동해도 20분 넘게 걸리는데, 그 거리를 두 발로 달리는 겁니다. 학창 시절 운동장을 기억해 보면 더 실감이 납니다. 운동장 한 바퀴를 200m로 잡으면, 10km는 그 운동장을 무려 50바퀴 도는 거리입니다. 제가 처음 이 수치를 접했을 때 솔직히 좀 당황했습니다. "생각보다 엄청 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감각이 결국 제 첫 대회 출전을 망설이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달리기를 시작한 지 1년이 됐다는 이유 하나로 출전을 결정했습니다. 1년을 뛰었으니 10km쯤은 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습니다. 대회장에 도착하자마자 그 자신감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워밍업을 하고, 유니폼도 세련됐고, 스마트워치도 차고 있었습니다. 분위기에 압도된 채 출발선에 섰습니다. 생리학적으로 보면 10km는 애매한 거리이기도 합니다. 몸속 근육과 간에 저장된 글리코겐으로 완주가 가능한 최대 거리가 대략 15~20km 선인데, 10km는 이 저장 연료를 다 쓰지 않아도 되는 거리인 동시에, 페이스를 잘못 잡으면 절반도 못 가서 젖산이 급격히 쌓이는 애매한 지점이기도 합니다. 짧다고 얕봤다가는 순식간에 발목을 잡히는 거리라는 걸, 저는 직접 몸으로 겪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 여의도역~강남역 직선 거리 약 9.5km — 그 거리를 두 발로
- 200m 운동장 기준 50바퀴에 해당하는 거리
- 트레드밀(러닝머신)에서 시속 8~9km로 1시간을 달려야 완주 가능한 거리
- 글리코겐 정말 고갈 거리(15~20km)보다로 짧지만, 페이스 실수가 바로 드러나는 애매한 구간
대회에서 실패하는 세 가지 오버페이스 패턴
오버페이스(over pace)란 자신의 현재 체력과 심폐 능력을 초과하는 속도로 달리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몸이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초반에 치고 나가는 것입니다. 제가 첫 10km 대회에서 정확히 이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출발 신호가 울리자마자 주변 사람들을 따라서 본능적으로 빠르게 달려 나갔고, 1km가 지날 무렵부터 이미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2km에서는 "내가 왜 나왔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3km 이후는 그냥 버티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나중에 러닝워치 기록을 확인해 보니 1km 구간이 5분 10초였는데, 그게 제가 평소 편안하게 유지하던 페이스보다 무려 1분 30초나 빠른 속도였습니다. 그 1분 30초 차이가 이후 8km를 완전 망가뜨렸다는 걸 숫자로 보고 나서야 실감했습니다.
이 초반 오버페이스의 원인은 젖산역치(Lactate Threshold)와 관련이 깊습니다. 젖산역치란 운동 강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서 근육에 젖산이 만들어지는 속도가 이를 제거하는 속도를 앞지르는 지점을 말합니다. 이 지점을 넘어서면 근육이 급격히 무거워지고 호흡이 걷잡을 수 없이 가빠집니다. 초반에 무리하게 속도를 올리면 몸은 순식간에 이 역치를 넘어서고, 한 번 넘어선 뒤에는 아무리 속도를 낮춰도 회복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제가 3km 이후로 그냥 버티기만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자주 보이는 패턴이 호흡 리듬의 붕괴입니다. 호흡 리듬이란 달리는 동안 들숨과 날숨의 박자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리듬이 깨지면 심박수가 급격히 오르고 옆구리가 쿡쿡 쑤시기 시작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시점에서 "체력이 여기 까지는구나"라고 포기하는데, 제 경험상 이건 체력 문제라기보다 호흡이 망가진 것에 가깝습니다.
세 번째는 기록에 대한 집착입니다. "1시간 안에는 들어와야지", "작년보다 빨라야지" 같은 목표가 몸을 경직시킵니다. 이렇게 되면 페이스 조절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스포츠 과학 분야에서는 이런 심리적 압박이 실제 근육의 긴장도를 높이고 에너지 소모를 불필요하게 증가시킨다고 보고 있습니다(출처: ResearchGate 스포츠 심리 연구). 제가 직접 느껴봤는데, 기록을 의식하는 순간 팔에 힘이 들어가고 어깨가 올라가면서 달리기가 훨씬 힘들어집니다.
완주 경험을 만드는 네 가지 실전 전략
전략을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두 번째, 세 번째 대회를 준비하면서 적용해 보고 실제로 달라졌다고 느낀 것들을 정리했습니다.
첫 번째는 초반 2km를 워밍업 구간으로 설정하는 것입니다. 워밍업(warm-up)이란 심박수와 체온을 서서히 올려 본격적인 운동에 몸이 적응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단계를 말합니다. 대회 현장에서는 흥분 상태 때문에 이 단계를 생략하게 되는데, 이게 치명적입니다. 저는 이후 대회부터 "처음 2km는 없는 셈 친다"는 마음으로 달렸고, 그 뒤 8km가 눈에 띄게 편안해졌습니다. 다른 참가자들이 앞질러 가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10km 레이스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저는 네거티브 스플릿(Negative Split) 전략도 함께 씁니다. 네거티브 스플릿이란 레이스 전반부보다 후반부에 더 빠르게 달리는 페이싱 방식으로, 초반에 체력을 아끼고 후반에 속도를 끌어올리는 게 핵심입니다. 예를 들어 목표 완주 시간이 1시간이라면, 전반 5km는 30분 30초, 후반 5km는 29분 30초로 잡는 식입니다. 처음엔 남들에게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하지만, 후반에 오히려 사람들을 하나씩 추월하는 경험은 초반에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걷다시피 들어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성취감을 줍니다.
두 번째는 호흡 리듬을 의식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저는 달리면서 발이 땅에 닿는 걸음 수에 맞춰 들숨과 날숨을 조절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방식을 케이던스(cadence) 호흡법이라고 부르는데, 분당 걸음 수와 호흡 주기를 맞추는 기법입니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1~2주 정도 연습하면 달리는 동안 호흡이 훨씬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걸 직접 확인했습니다. 페이스가 빨라질수록 리듬을 2보 들숨, 1보 날숨으로 짧게 바꾸는 것도 방법인데, 이건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에 시도하는 걸 권합니다.
세 번째로, 걷기 1분은 실패가 아닙니다. 인터벌 러닝(interval running), 즉 뛰기와 걷기를 교대로 반복하는 방식은 초보자에게 완주 확률을 높이는 데 효과적인 전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Runner's World). 저도 처음에는 걷는 게 창피하다고 생각했는데, 1분 걷고 다시 달리면 심박수가 생각보다 빠르게 안정됩니다. 무거웠던 다리에 힘이 들어오는 느낌도 실제로 있습니다. 완전히 멈추는 것과 1분 걷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저는 급수대 구간을 이 전략에 활용합니다. 급수대에서는 어차피 속도를 줄여야 하니, 그 구간에서 물을 마시며 20~30초 정도 걷고 다시 페이스를 회복하는 식으로 체력을 관리했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 목표를 기록이 아닌 완주 경험 자체에 두는 것입니다. 저는 처음 대회에서 기록 목표를 세웠다가 완주 후에도 개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두 번째 대회에서 "그냥 완주만 하자"라고 마음먹었을 때 훨씬 즐겁게 달렸고, 역설적으로 기록도 더 잘 나왔습니다. 완주 경험이 쌓이면 그게 하프코스, 나아가 풀코스로 가는 실질적인 밑거름이 됩니다. 대회 전날 밤 탄수화물 위주로 식사를 챙기고 충분히 수면을 취하는 것도 페이스 조절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걸 여러 번의 대회를 거치며 배웠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10km 대회 처음 나가는데 목표 기록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요?
A. 첫 출전이라면 기록 목표보다 완주 자체를 목표로 삼는 게 훨씬 현실적입니다. 기록에 집착할수록 오버페이스가 발생하고 후반에 무너지기 쉽습니다. 완주 경험이 쌓이고 나면 기록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저도 첫 대회에서 기록 목표를 세웠다가 쓴맛을 봤고, 이후 방식을 바꿔서야 달라졌습니다.
Q. 달리다가 걸으면 실격되거나 완주 기록이 안 나오나요?
A.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10km 대회에서 걷기는 매우 흔한 일이며, 걸어도 완주 기록은 정상적으로 인정됩니다. 오히려 인터벌 러닝처럼 짧게 걷고 다시 달리는 전략이 완주율을 높인다는 건 경험자들 사이에서도 통용되는 이야기입니다. 걷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Q. 네거피브 스플릿, 처음부터 시도해도 되나요?
A.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초반에 몸이 근질거려서 자꾸 속도를 올리고 싶어지기 때문입니다. 러닝워치로 구간별 페이스를 확인하면서 의식적으로 전반부를 억제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Q. 옆구리가 아픈 건 체력이 부족한 건가요?
A. 옆구리 통증(사이드 스티치)은 체력 부족보다 호흡 리듬이 깨졌을 때 주로 발생합니다. 호흡이 불규칙해지면 횡격막에 경련이 오면서 옆구리가 쑤시는 느낌이 납니다. 속도를 조금 줄이고 호흡을 의식적으로 고르게 해주면 대부분 수분 내에 완화됩니다.
결론
달리기 1년 만에 나간 첫 10km 대회에서 저는 오버페이스로 후반 내내 고통받았습니다. 그런데 완주하고 나서 느낀 성취감은 그 고통과 비교가 안 됐습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던 그 레이스가 없었다면 지금도 페이스 조절의 중요성을 이렇게 절실히 알지 못했을 겁니다. 완주 경험은 기록으로 환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경험이 쌓여야 하프코스도, 풀코스도 현실적인 목표가 됩니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1분도 뛰기 힘들었던 저도 지금은 1시간 이상을 달리고 있습니다. 천천히, 오래 달릴 수 있는 페이스를 찾는 것부터가 진짜 러닝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